제 6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기본) 31번 문제 풀이
1883년 미국에 보내진 조선의 사절단... 이는 보빙상입니다. 1882년에 맺어진 조미수호통상조약의 답례로써 사신단이 파견되었습니다.
① 보빙사는 미국에 파견된 사신단입니다.
② 수신사는 일본에 파견된 사신단이며, 강화도조약이후 파견되기 시작했습니다.
③ 영선사는 청에 파견된 사신단으로 이 영향으로 무기제조공장인 기기창이 구성되었습니다.
④ 조사시찰단도 일본에 파견된 사신단입니다. 일본의 선진문물 수용을 원했지만 일본을 극도로 꺼려하는 여론으로 인해 고종은 부산에 있는 어윤중 등을 극비리에 파견하였을 정도였습니다.
정답은 1번입니다.
제 6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기본) 32번 문제 풀이
을사의병때 대표적인 의병장 중에 한명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인물은 위정척사파의 대표적인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이 분은 고종의 친정을 상소하였고 흥선대원군이 실각한 원인을 제공했습니다. 을사의병당시 외교권 박탈에 저항하여 의병을 거병하였습니다. 그러나 일본에 붙잡혀 대마도로 유배를 가게 되었는데 그 일화가 유명합니다.
(가)인물은 최익현입니다. 최익현은 대마도로 유배갈때 일본땅을 밟지 않겠다며 유배길에 오르는 배에 승선하기 전에 본인의 신발에 조선의 흙을 넣어 갔습니다. 유배지에 도착하고서도 일본인이 주는 밥은 먹지 않겠다며... 결국 굶어 돌아가셨습니다. 개화에 대한 눈이 띄워지지는 않았지만 지조있는 최익현 위인의 숭고한 정신은 본받을만 하다 생각됩니다.
① 신돌석, 을사의병장 중에서 대표적인 인물이며, 최초 평민출신 의병장이기도 하며 이분은 부를때에 태백산 호랑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② 최익현, 1870년대 대표적인 위정척사파의 계보를 잇는 분입니다. 이분은 신돌석과 함께 대표적인 을사의병장으로 공부하였습니다.
③ 안중근, 1909년 이토히로부미를 하얼빈역에서 총으로 쏴 죽였습니다. 잘 알고들 있으시겠지만 당시 안중근은 이토히로부미(이등박문)가 누구인지 몰랐다고 합니다. 조선에 더한 악행을 저지를 위험한 인물은 안중근께서 제거해줬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안중근은 많이들 알고 계시겠지만 그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 그리고 영화로 최근에도 나왔었죠? 모두들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④ 홍범도, 1920년 봉오동전투에서 대한독립군을 이끌고 항일무장투쟁사에서 최초로 승리한 전투를 이끌었습니다.
정답은 2번입니다.
제 6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기본) 33번 문제 풀이
5명의 인물들이 열거되어 있습니다. 공부 했다면 알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알겠죠? 이들은 갑신정변(1884년)을 주도한 핵심인물입니다. 이 사건은 근대개혁을 목적으로한 최초의 근대적 개혁운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882년 임오군란을 짚고 가야 합니다.
임오군란은 구식군대와 신식군대(별기군)에 대한 차별에서 비롯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구식군대, 신식군대 간의 대립이라기 보다는 서구문물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새로운 문물과 기존의 문물이 조화를 이루지 못해 나타난 참극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구 문물을 받아들여 부국강병의 기반을 다지는 것이 중요한만큼 그 과정상에 나타날 수 있는 기존 질서에.. 새로운 질서가 들어왔을때 나타날 수 있는 사회 현상도 챙겼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 임오군란이라는 내부분열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분열은 거기에서 멈춰지지 않았습니다.
온건개화파와 급진개화파로 분열되게 된 것입니다. 온건개화파.. 당시 명성왕후를 중심으로 한 집권세력들은 서구문물이 꼭 필요함을 인지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죽어나가는 상황에 이르는 것은 원치 않았습니다. 임오군란으로 명성왕후가 상궁나인으로 변복하지 않았더라면 구식군인들에게 죽임을 당할 수 있은 명성왕후 신변상의 위급합을 겪었으니 당연히 온건개화파로 입장이 정리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반면 급진개화파는 하루라도 빨리 서구열강의 신문물을 받아들여 일본이 메이지 유신으로 급성장한 것처럼의 막강한 변화를 희망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온건개화파의 뜨뜻미지근한 개화입장이 성에 차지 않았을 것입니다.
① 갑신정변 1884년 정답입니다.
② 을미사변은 1895년, 사무라이들에 의해 한 나라의 왕비가 죽임을 당한 매우 끔찍한 사건이었습니다.
③ 삼국간섭 1895년, 러시아, 프랑스, 독일이 일본을 압박하여 청일전쟁으로 일본이 승리하여 빼앗은 요동반도를 반환하라고 압박하자 일본은 주저하지 않고 청에 반환했고 이 상황을 지켜보던 조선은 러시아의 힘을 통해 일본의 간섭에서 벗어나려 했습니다. 결국 이 상황이 을미사변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④ 아관파천 1896년, 을미사변이후 고종과 세자였던 순종이 일본의 눈을 피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사건입니다.
정답은 1번입니다.
제 6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기본) 34번 문제 풀이
내용을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영국이 거문도를 불법 점령한 상황을 조선 정부가 공문을 보내 물러나라고 조선의 뜻을 전한 문서입니다. 우리는 이를 거문도사건(1885년)이라 합니다.
1863년 고종 즉위
1876년 강화도 조약
1882년 임오군란
1894년 갑오개혁
1905년 을사늑약...
정답은 (다), 3번입니다.
제 6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기본) 35번 문제 풀이
이 분이 누구신지 알 수 있을까요? 호가 도산이라 합니다... 실상 역사공부를 하신 분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으리라 생각되는데요! 이 분은 도산 안창호 선생이십니다. 이분은 신민회(1907~1911년) 멤버이십니다. 안창호는 대성학교, 이승훈은 오산학교를 설립하였습니다.
① 안창호 선생께서 평양에 대성학교를 세우셨습니다.
② 원산학사는 최초의 근대식 사립학교로 원산의 덕원주민들이 만든 학교입니다.
③ 육영공원은 이름에서 Park라는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관립 어학당과 같았던 동문학을 확대 개편하여 만든 최초 근대적 관립학교입니다.
④ 이화학당은 개신교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설립되었고, 이화학당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정답은 1번입니다.
제 6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기본) 36번 문제 풀이
(가) 한일의정서는 러일전쟁(1904~1905년)중에 일본이 고종을 압박하여 맺은 조약약으로 1904년에 맺어졌습니다.
(나) 한일병합조약은 경술년(1910년)에 일어나서 경술국치라고도 합니다. 이로써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된 협정입니다.
① 톈진조약은 갑신정변직후 1884년 청과 일본사이에 맺은 조약으로 조선에 군인을 파병할때 서로 보고하자고 한 약속입니다.
② 정미7조약(1907년)은 한일신협약이라고도 합니다. 이로써 군사권이 박탈되었고, 고종의 퇴위와 군사권 박탈에 저항하여 정미의병이 일어났습니다.
③ 제물포조약은 1882년 임오군란 직후에 일본이 이로 인한 피해롤 배상받겠다면서 강압적으로 맺은 조약입니다.
④ 시모노세키조약은 청일전쟁(1894~1895년)에서 승리한 일본이 청으로부터 요동반도, 대만, 펑후섬 등을 할양받는다는 조약입니다.
정답은 2번입니다.
제 6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기본) 37번 문제 풀이
전봉준이 나왔습니다. 전봉준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은 동학농민운동(1894~1895년)입니다. 전주성싸움에서 승리한 동학농민군은 정부와 전주화약을 맺고 있는 상황이었고 청군과 일본군이 들어오자 우리의 혼란은 끝났으니 너희들은 이제 너희들 나라로 돌아가라는 취지에서 동학농민군들은 자진해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일본군은 이를 기회로 삼아 경복궁을 포위하고 청일전쟁을 일으켜 청을 물리치고 조선을 청의 간섭으로부터 배제시키는 상황에 이르러 일본이 조선을 장악하려 하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동학농민군들은 다시 결집하여 2차 동학농민운동을 일으켰으나 일본의 선진 무기와 작전으로 공주 우금치에서 패배하고, 종국에서 전봉준은 붙잡혀 처형당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습니다.
① 동학 1대 교주 최제우는 1864년에 동학박해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② 동학 농민군이 우금치 전투에서 패하면서 반외세적 성격의 2차 봉기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③ 교조신원회복운동으로 최제우를 비롯하여 동학교도들의 신원을 회복하고자 1892년 삼례 집회가 열렸습니다.
④ 조병갑의 탐학에 맞서 고부 농민 봉기가 발생했고 이는 동학농민운동의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정답은 2번입니다.
제 6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기본) 38번 문제 풀이
일본에 진 빚 1300만원을 갚자고 한 이 운동!! 1907년 서상돈이 중심이되어 대구에서 시작된 운동입니다. 양기탁과 영국인 베델이 발행하기 시작한 대한매일신보의 영향으로 성공하는듯 했으나.. 일본의 방해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① 정답입니다.
② 문자보급운동은 1920년대 조선일보가 주관한 애국계몽운동의 일환으로 실시되었습니다.
③ 물산장려운동은 민족실력양성운동의 일환으로 평양의 조만식을 중심으로 1920년대에 있었습니다.
④ 민립대학 설립운동도 민족실력양성운동의 일환으로 이상설이 중심이되어 1920년대에 있었습니다.
정답은 1번입니다.
제 6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기본) 39번 문제 풀이
동대문에서 열린 전차 개통식, 이는 1899년에 있었습니다. 대한제국은 1897~1910년입니다. 대한제국시기에 있었던 일이 아닌 것을 고르면 됩니다.
① 1908년에 만들어졌습니다.
② 덕수궁 중명전 건립은 1905년에 건립되었습니다.
③ 박문국에서 한성순보가 발행된 것은 1883년입니다.
④ 경부선 철도는 일본에 의해 1905년에 만들어 졌습니다.
정답은 3번입니다.
제 6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기본) 40번 문제 풀이
마지막 황제.. 순종입니다. 순종은 1926년 서거하였곡 이 장례일에 맞춰 6.10만세 운동이 있었습니다. 이 운동은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결성되었다가 일본에 발각되면서 학생중심의 운동으로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전국적으로 큰 부흥이 있었다기 보다는 1919년 3.1운동이후 처음 있었던 항일민족운동이라 할 수 있고,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으로 그 정신이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① 1926년 6.10만세 운동은 순종 서거일과 관련있습니다.
② 헤이그특사는 1907년 고종이 을사늑약(1905년)에 대한 상황을 서구열강에 알리려 이위종, 이상설, 이준 등을 일본 몰래 파견하였습니다.
③ 토지조사사업은 1910~1918년에 있었습니다.
④ 제너럴셔먼호사건(1866년)은 신미양요(1871년)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정답은 1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