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3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기본) 31번 문제 풀이
1883년 민영익을 비롯한 보빙사 단원들은 1882년에 맺어진 조미수호통상조약에 대한 답방으로 미국에 사절단으로 파견되었습니다. 이 조약은 조미수호통상조약입니다.
조미수호통상조약은 1880년 수신사2차 파견에서 비롯된 조약입니다. 김홍집이 일본에서 조선책략(청의 황준헌 저술)을 국내에 유입하면서 미국과의 관계를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청나라는 북쪽에 접하고 있는 러시아를 견제하고자 청 혼자서는 힘든만큼 조선, 일본, 미국을 연계하여 러시아를 견제하려했고, 조선은 상국의 의견을 적극 수용하려는 자세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조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도 국내에서도 갈등이 있었습니다. 특히 위정척사파인 이만손이 주도하여 영남만인소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의견은 이러했습니다. 가까운 나라를 적으로 돌리고 머나먼 나라와 친분을 쌓는다는 것은 말도 안되면 이로써 가까운 나라의 화를 당할까 우려하는 대목입니다. 틀린말은 아니었지만.... 결국 미국과의 조약은 체결되었습니다.
그 내용 중 대표적인 3가지 내용은 시험에도 잘 나오니 챙겨두세요!
조미수호통상조약의 대표적인 조항 3가지
-거중조정: 제 3국의 침략시 보호해준다.
-치외법권: 영사재판권이라고도 하며, 이는 강화도조약(1876년)에도 있었던 불평등조약입니다.
-최혜국대우: 제 3국에 혜택을 줬던 것은 자동으로 미국에게도 줘야한다는 것으로 이또한 불평등 조약입니다.
① 최혜국대우 규정이 있었습니다.
② 통감부 설치는 을사늑약(1905년)으로 빼앗은 외교권 및 행정관련 업무를 하는 기구로 일본이 세운 부서입니다.
③ 3포개항은 강화도조약(1876년) 내용입니다.
④ 임오군란(1882년)으로 일본 공사관과 일본인 장교가 피살되자 일본인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을 주게 되면서 일본군이 주둔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정답은 1번입니다.
제 63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기본) 32번 문제 풀이
우정총국은 근대적 우편업무를 보는 우체국입니다. 이곳에서는 역사적 사건이 있었습니다. 문제와는 별개이지만 알아두면 좋으니 참고하세요
1884년에 개국축하연이 있었습니다. 그 뒷이야기는 하지 않아도 알 것입니다.
1882년 임오군란이 발생한 원인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임오군란은 구식군대와 신식군대인 별기군의 단순한 대립이라 치부하면 안됩니다. 구제도와 신제도, 위정척사파와 개화파의 대립이며, 흥선대원군파와 명성왕후파의 대립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개화파의 핵심 인물들이 죽거나 다쳤고, 심지어 명성왕후마저도 죽을뻔했습니다. 과연 죽음에 이르면서까지 개화를 해야할까요? 당연히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개화가 필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사회의 적응시간도 필요하고 그 과정이 수탄할때 비로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개화파의 흐름은 개화파 내부 분열을 조장했고, 급진개화파와 온건개화파로 나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상황은 우정총국에서 시작된 갑신정변(1884년)으로 폭발하였습니다. 갑신정변은 최초의 근대적 개혁운동으로 김옥균, 홍영식, 서재필, 서광범, 박영효가 핵심이 되어 일으킨 정변입니다. 이들은 14개조 정강을 발표하여 조선을 개혁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3일만에 끝나 3일천하합니다.
① 나운규의 아리랑은 1926년 단성사에서 개봉하였습니다.
② 근대적 우편업무를 보는 곳이 우정총국입니다.
③ 한성순보는 박문국에서 발간한 관보입니다.
④ 육영공원은 1886년에 개설된 관립학교로 1883년 개설된 어학원을 확대 개편한 학교입니다. 이곳에 헐버트는 교사로 초빙되었습니다.
정답은 2번입니다.
제 63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기본) 33번 문제 풀이
노비제 폐지는 신분제 폐지를 의미합니다. 1894년 갑오개혁의 내용에 이러한 내용도 있었습니다. 갑오개혁은 동학농민운동이 반영된 내용이기는 하지만 일본이 청일전쟁(1894년)을 의도적으로 일으키고 청을 견제하고 서둘러 조선을 일본의 근대화된 국가에 어울리도록 제도적 개선을 하는 과정에서 과거제폐지, 연좌제 폐지, 조혼금지, 재가허용 등의 내용이 함께 있었습니다.
동학농민군의 의견을 수용하여 집강소(농민자치행정기구)를 전국 각지에 세우고 지방의 의견을 수용하고자 교정청을 중앙에 조직하였지만 일본은 이마저도 무시하고 군국기무처를 만들어 갑오개혁을 단행한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조선 백성을 위한 개혁내용이 있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닌!! 일본의 구미에 맞게 개혁하는 과정에 조선의 백성을 위하는 듯한 내용이 몇 있었다고 보시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① 비변사는 중종때 임시군사회의기구로 조직되었다가 왜구를 비롯하여 잦은 침략이 이어지자 명종때 상설기구화 되었습니다. 급기야 선조때 임진왜란이 발발하면서 최고권력기구가 되었습니다.
② 원수부는 광무개혁(1897년) 군사기구로 지방에 진위대, 중앙에 시위대를 두었습니다.
③ 홍문관은 성종때 조직된 국왕 자문기구입니다. 언론기관인 사헌부, 사간원과 함께 3사입니다.
④ 군국기무처, 일본이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개혁하고자 만든 조선의 정부기구입니다.
정답은 4번입니다.
제 63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기본) 34번 문제 풀이
1896년... 서재필은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을 만들었습니다. 특이점은 독립협회 산하의 신문이지만, 독립협회가 조직되기도 전에 독립신문이 먼저 발간되었다는 점입니다. 독립신문에 독립의 의미도 살펴야 하는 부분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독립은 일본 식민지로부터 독립한다는 개념이 아닙니다! 일본 식민지가 1910~1945년인만큼 1896년은 이와는 성격이 다른 독립임을 알아야 합니다.
독립협회(1896~1898년)가 조직된 이후에는 청의 사신을 맞이하는 영은문을 헐고 그 인근에 독립문을 세웠습니다. 이는 청으로부터 사대관계를 끊는 독립을 의미함을 인지하시길 바랍니다!
① 천도교기관지는 만세보입니다.
② 박문국은 관보를 비롯하여 정부부처의 도서를 발간하는 부서입니다. 대표적으로 한성순보가 발간되었습니다.
③ 독립신문은 총 4페이지 중에서 3페이지의 순한글 지면과 1페이지의 영문 지면으로 발행되었습니다. 우리 백성들이 손쉽게 정보를 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의도와 함께 서구열강에 우리의 처지를 알리고자 한 의도가 깔려 있습니다.
④ 시일야방성대곡은 황성신문에 장지연이 실은 사설로 을사늑약(1905년)에 대한 반발 내용입니다.
정답은 3번입니다.
제 63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기본) 35번 문제 풀이
왕비를 시해했다... 바로 아시겠죠! 을미사변(1895년)입니다.
청일전쟁(1894~1895년)으로 승리한 일본은 시모노세키조약을 통해 청나라의 요동반도, 대만, 펑후 섬을 할양받게 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미소는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러시아, 프랑스, 독일 3국이 요동반도 반환을 요구한 것입니다. 힘들여 빼앗은 땅을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삼국간섭(1895년)으로 일본은 순순히 요동반도를 청에 돌려주게 된 것입니다.
국내에 일본의 간섭에서 벗어나려던 명성왕후를 비롯한 국내 세력들은 러시아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려 하였습니다. 이를 극도로 민감하게 받아들인 일본은 이러한 상황에 앞장서고 있는 명성왕후를 작전명!! 여우사냥을 통해 한 나라의 국모를 시해하는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이후 일본은 시급히 명성왕후 시신을 화장하고, 을미개혁(1895년)을 단행하여 조선내정에 노골적으로 간섭하였고,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저항한 위정척사파들을 중심으로 을사의병활동을 통해 저항하기도 했습니다.
① 외규장각도서 약탈은 병인양요(1866년)때 프랑스군이 도난해 간 것입니다.
② 영선사는 청나라에 파견된 사절단으로 이후 무기제조공장 기기창이 만들어졌습니다.
③ 제너럴셔먼호사건(1866년)은 평양인근 대동강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신미양요(1871년)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④ 을미사변(1895년)이후 일본의 압박이 심해지고 고종의 활동에 제약을 받자 고종은 러시아의 공사 베베르의 건의에 따라 러시아 공사관으로 파천(아관파천; 1896년)하였습니다.
정답은 4번입니다.
제 63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기본) 36번 문제 풀이
모든 정황을 파악해보면 이 단체는 애국계몽단체인 신민회(1907~1911년)입니다.
① 근우회는 신간회(1927~1931년)의 자매단체입니다.
② 보안회(1904년)는 조직된 애국계몽단체로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를 저지한 단체입니다.
③ 신민회가 정답입니다.
④ 조선어학회는 우리말큰사전 편찬을 시도하다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해체되었습니다.
정답은 3번입니다.
제 63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기본) 37번 문제 풀이
당시 65세라는 나이는 지금의 80세 이상의 나이 정도의 노령으로 이 분은 강우규입니다.
① 김구선생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멤버로 주석직에 있기도 했고 일제에 대한 저항의지가 꺽였을때 이를 살리고자 한인애국단을 조직하기도 했습니다.
② 정답입니다.
③ 한인애국단 소속 윤봉길은 훙커우 공원에서의 활약으로 중국 국민당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는데 한 몫했던 도시락폭탄의 주인공입니다.
④ 이승만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이자 광복이후 대한민국 정부의 제1대 대통령입니다.
정답은 2번입니다.
제 63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기본) 38번 문제 풀이
손병희는 동학 3대 교주로 동학의 명칭을 천도교로 바꾼 인물입니다.
① 청산리전투(1920년)는 김좌진장군이 리드하였습니다.
② 이토히로부미는 안중근 의사가 처단하였습니다.
③ 고종의 밀명을 받아 이준, 이위종, 이상설 등이 파견되었지만 그 결과는 고종퇴위로 이어졌습니다.
④ 민족대표 33인에 손병희가 있습니다. 개신교 출신도 16명이나 가담하였습니다.
정답은 4번입니다.
제 63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기본) 39번 문제 풀이
이상재가 중심이 되어 일어난 민족실력양성운동으로 (가)는 민립대학설립운동입니다.
① 1926년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준비되었다가 일본에 발각되어 학생중심으로 전환되었고 6.10만세운동은 순종 장례일과도 연관되어 있습니다.
② 물산장려운동은 평양에서 조만식을 중심으로 1920년대 있었던 민족실력양성운동입니다.
③ 광주학생항일운동은 1929년 광주에서 있었던 3.1운동이후 최대규모의 항일민족운동으로 신간회(1927~1931년)가 후원한 운동입니다.
④ 민립대학설립운동을 통해 민족실력양성에 힘썼으나 실패하였습니다.
정답은 4번입니다.
제 63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기본) 40번 문제 풀이
① 강주룡은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여인의 몸으로 혈혈단신 을밀대에 올라 항의하였습니다. 이는 최초 고공에서 농성을 한 것입니다.
② 남자현은 독립운동의 어머니라 일컬어지며 서로군정서군에서 활동했습니다.
③ 유관순은 1919년 3.1운동에 참여하여 고초를 겪다 죽임을 당한 위인입니다.
④ 윤희순은 최초의 여성 의병장으로 의병가를 짓기도 했습니다.
정답은 1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