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1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기본) 31번 문제 풀이
사발통문, 황룡촌전투 승리이후 동학농민군은 전주성을 함락하여 전주화약을 맺었습니다. 이후 일본군이 해산하지 않자 반외세적 성격을 띄고 2차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지만 우금치전투에서 일본군에 패배한 이후 전봉준이 참형되고 실패로 끝나게 되었습니다.
① 임술농민봉기(1862년, 진주농민봉기)의 진상을 파악하고자 박규수가 안핵사로 파견되었습니다.
② 제1차 동학농민봉기(1894년)로 전주성을 함락시킨 동학농민군은 정부와 전주화약을 맺고 각 지방에 집강소(농민자치행정기구)를 설치하고 이곳의 의견을 중앙에서 모으고자 교정청을 설치하였습니다.
③ 한성조약은 갑신정변(1884년)직후 조선과 일본사이에서 맺어진 불평등한 조약입니다
④ 평안도 지역에 대한 차별로 홍경래의 난(1811년)이 일어났습니다.
정답은 2번입니다.
제 61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기본) 32번 문제 풀이
① (가) - 신라 원성왕은 유교적 소양을 통해 관리를 훈련하는 독서삼품과를 실시했습니다.
② (나) - 후주출신 쌍기의 건의로 고려 광종은 과거제를 실시했습니다.
③ (다) - 조선 중종때 조광조는 훈구세력의 횡포를 견제하고 인재 양성과 등용을 목적으로 훌륭한 학자들에게 관리를 추천받는 현량과 실시를 주장했다가 기묘사화로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④ (라) - 광무개혁(1897년)은 아관파천(1896년)이후 황제에 오른 고종이 추진한 개혁으로 본문에 나온 군국기무처에서 올린 개혁안은 1차 갑오개혁에 관한 내용입니다.
정답은 3번입니다.
제 61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기본) 33번 문제 풀이
① 신민회(1907~1911년)는 애국계몽단체로 유일하게 무장훈련 학교인 신흥무관학교를 두었으며, 안창호는 대성학교, 이승훈은 오산학교를 세웠습니다. 만주에 삼원보라는 비밀 기지를 만들기도 했으며 태극서관, 자기회사 등을 운영하여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이회영이 후원한 단체입니다.
② 독립협회(1896~1898년)는 서재필을 중심으로 운영된 조직으로 독립신문, 독립문, 만민공동회, 관민공동회를 통회 헌의6조 발표, 중추원설립 등의 활동을 하였지만 황국협회의 방해로 해산되고 말았습니다.
③ 대한자강회(1906년)는 우리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하기 바라는 마음으로 조직된 애국계몽단체입니다. 국권 회복을 목적으로 교육과 산업 진흥 및 입헌군주제를 주장했습니다.
④ 조선어학회는 우리말 큰 사전 편찬을 시도했지만 만드는 중도에 조선어 학회 사건으로 해체되었습니다.
정답은 2번입니다.
제 61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기본) 34번 문제 풀이
1907년 고종은 이위종, 이상설, 이준을 헤이그특사를 일본 몰래 파견하였으나 서구열강의 무관심과 일본의 방해로 실패하였고 이를 빌미로 일본은 고종을 퇴위시키고 정미7조약(1907, 신한일협약)을 체결하여 군사권을 박탈하였습니다.
① 청일전쟁(1894~1895년)은 동학농민운동 과정에 발발한 사건으로 1884년 톄진조약에 근거하여 일본의 꼼수가 더해져 조선에서 발생한 전쟁입니다.
② 최혜국 대우 조항이 있었던 최초의 조약은 서양과 최초로 맺은 조미수호통상조약(1882년)으로 제3국의 혜택이 해당국에 없으면 자동으로 적용되는 권리입니다.
③ 운요호사건(1875년)은 강화도조약(1876년)이 맺어지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④ 통감부는 1905년 을사늑약에 의거해 박탈된 외교권을 활용한 부서로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배하는 초석이 되었습니다.
정답은 4번입니다.
제 61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기본) 35번 문제 풀이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에서 덕수궁으로 환궁(1897년)한 이후 국호를 대한제국이라 바꾸고 연호 광무, 대한제국의 황제 고종으로 환구단에서 즉위하게 됩니다.
① 지계는 광무개혁(1897년) 당시 토지제도 개혁 차원에서 발급된 것입니다.
② 척화비건립(1871년)은 신미양요 직후 조선의 통상수교거부를 대내외에 알리기 위해 세웠습니다.
③ 2차 갑오개혁 당시 홍범14조가 반포되었습니다.
④ 1925년 식민지배를 목적으로 일본은 치안유지법을 제정했습니다.
정답은 1번입니다.
제 61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기본) 36번 문제 풀이
① 서울진공작전(1908년)은 정미의병들이 13도창의군(1907년)을 이인영과 허위를 중심으로 창설하여 일본을 몰아내고자 실시한 군사작전이지만 실패했습니다.
② 봉오동전투, 청산리대첩(1920년)으로 패배한 일본이 간도참변을 일으키는 등 만주지역에서 항일무장 투쟁임 생활이 어려워진 동포들이 밀산부에서 집결하여 자유지로 이동하였습니다.
③ 어재연은 신미양요(1871년)때 광성보에서 미군에 맞서 싸웠지만 전사하였습니다.
④ 김원봉이 조직한 의열단의 단원들이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을 받아 황푸군관학교에서 군사 훈련을 받았습니다.
정답은 1번입니다.
제 61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기본) 37번 문제 풀이
① 백강전투는 백제멸망(660년)이후 지금의 금강하구에서 일본이 백제 부흥운동을 도와 나당 연합군에 맞서 싸웠지만 패배한 전쟁입니다.
② 진주성 전투는 진주대첩으로 김시민장군이 임진왜란(1592년) 당시 일본에 맞서 승리한 전쟁입니다.
③ 청산리전투(1920년) 김좌진 장군이 이끄는 북로군정서군이 일본군에 맞서 최대 규모의 승리를 거둔 전쟁입니다.
④ 대전자령전투는 지청천을 중심으로 대한독립군이 남만주에서 일본군에 맞서 중국의 호로군과 함께 연합하여 승리한 전투입니다.
정답은 3번입니다.
제 61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기본) 38번 문제 풀이
① 심훈은 상록수 저술
② 윤동주 서시 저술
③ 이육사 광야 저술, 의열단의 단원이기도 했습니다.
④ 한용운의 님의 침묵
정답은 3번입니다.
제 61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기본) 39번 문제 풀이
① 방곡령은 곡식이 조선 외부로 바뀌는 것을 막는 명령으로 1889년의 함경도 방곡령이 가장 대표적입니다. 함경도 관찰사인 조병식이 국외, 일본으로 유출되는 곡식량이 많아 백성들이 어려움을 겪자 방곡령을 실시했다가 되려 조약에 위배된다면서 피해배상을 해줘야 했던 어이없는 사건이었습니다.
② 정조는 신해통공을 실시하여 도성안의 상권을 시전상인에게 주고 난전을 금하는 권리인 금난전권을 실시했던 기존의 정책을 폐지하고 누구나 난전이 가능하다는 정책을 실시한 것입니다.
③ 산미증식계획은 1920년대에 실시한 일제시대 경제정책으로 말 그대로 쌀 생산량이 증가하기는 했지만 일본으로 유출되는 쌀의 량이 많아 되려 조선 백성 1인당 소비량은 현저하게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④ 토지조사사업(1910~1918년)은 일본이 우리의 경제력을 장악하려한 정책으로 토지의 대부분을 일본인이 장악하게 된 정책입니다.
정답 3번입니다.
제 61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기본) 40번 문제 풀이
1937년 중일전쟁이후 일본 남자의 씨가 말라가자 조선인 남자를 일본의 성스러운 전쟁에 참여시키고자 우리 조선인의 정신을 일본인화 하기 위해 민족말살통치를 시작하게 됩니다. 태평양전쟁은 1941년부터 있었던 전쟁으로 이 시대는 1930년대 통치 방식이며 이와 상관 없는 것을 고르면 됩니다.
① 태형, 헌병경찰은 1910년대 무단통치시대입니다.
② 강제 징용으로 끌려가는 청년의 모습은 1930년대 민족말살통치시대입니다.
③ 공출로 쇠로 된 가마솥을 빼앗아가 무기로 제조하는 과정은 1930년대 민족말살통치시대입니다.
④ 황국신민서사시 암송은 우리 민족의 정신을 말살하기 위한 1930년대 통치 방식입니다.
정답은 1번입니다.